고대인들은 천둥·번개를 ‘신의 노여움’으로 이해하고 두려워했다.
그러나 현대인들 가운데 천둥이나 번개를 무서워하는 이는 많지 않다.
그것이 단순한 기상현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이처럼 공포는 대개 무지에서 비롯하며, 공포를 낳는 대상의 실체를 알고 나면 공포는 약해진다.
지난해 연말 강남 한복판의 빌딩이 붕괴위험에 처했다며 입주자를 긴급대피시키는 초유의 일이 발생했다.
불과 27년된 고층 오피스빌딩 기둥이 원인모를 이유로 심하게 파손되어 행여 건물이 붕괴될지 모른다는 소식은 자못 공포스러웠고 해당건물입주자들은 패닉에 휩싸였다.
관할 강남구청은 즉각 건물내 전체입주민 퇴거명령을 내렸고 긴급보강공사후 정밀안전진단을 거쳐 철거여부를 결정하겠다는 강력한 행정조치를 발동했다.
강남구청장의 표현대로라면 시민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신속한 초기대응이다.
그러나 강력한 조치는 시민들에게 ‘내가 있는 건물도 혹시?’ 모른다는 불안함과 막연한 공포를 불러왔다.
본지 자문위원이자 콘크리트 기술강좌를 20년 넘게 게재하고 있는 청주대 한천구석좌교수는 이같은 공포는 ‘잘못된 원인진단에서 오는 과도한 불안감’에서 비롯됐다고 지적한다.
“건물 구조나 설계가 잘못됐으면 해당 기둥만 파손이 일어날 리가 없잖아요. 상식선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야 되는데 제대로 된 원인규명없이 붕괴될 것이니 즉각 철거하란식의 시민단체나 무조건 퇴거부터 시키겠다는 행정당국의 조치는 마치 황달에 안약을 넣는 것과 같다 생각됩니다” 황달환자는 간에 이상이 생겨 눈의 흰자부분이 노랗게 착색되는 질환인데 안약을 넣으라는 처방을 받으면 어찌될까?
27년간 아무 문제없던 건물이 갑작스럽게 기둥 한곳에서 압축파괴현상이 벌어진 것은 한교수의 지적을 빌리자면 ‘크리프 파괴’에서 비롯됐다는 설명이다.
그의 말대로 해당부위에 부실콘크리트가 시공되어 크리프 파괴가 일어난 것이라면 그 부위 보강공사를 하면 되는 것이고 건물은 지속사용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와 구는 제대로 된 원인파악이 되기전 붕괴가능성을 기정사실화해 입주민 퇴거조치를 단행했다. 단호한(?) 조치로 공포는 증폭됐다. 시민단체는 당장 철거하라고 아우성이다. 건물이 곧 무너질지도 모른다는 염려는 붕괴된다는 확증편향으로 급히 기울기 시작했다. 다습 건조 혹한과 혹서의 기후변화가 큰 환경에서 장기간 사용되던 대형건물이 비워질 경우 콘크리트의 온습도 관리문제로 오히려 동결파손이 유발된다는 현실적 고려는 공포에 떠밀려 제껴졌다.
관할 강남구청 공무원들은 “최악의 상황을 대비하는 것이 관의 임무”라며 퇴거조치에 대한 정당성을 강변한다.
난데없이 잘 지내던 건물에서 떠밀려나온 입주민. 우리 건물도 혹시? 붕괴공포에 떠는 시민들. 원인 캐묻는 기자 상대하느라 진빼는 공무원들 이들이 혹시 레미콘업계에 날아갈 화살을 대신 맞은 것은 아닌지...
정확한 진단이 나올 때까지, 무지의 베일이 벗겨질 때까지 공포는 증식을 멈추지 않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