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2.04.29 01:10 수정일 : 2022.06.29 05:48 작성자 : 관리자 (c)
차량용 반도체 ‘ECU 대란’에 직격탄 맞은 건설기계
믹서트럭 등 교체부품 턱없이 부족해 운행중단 위기
건설현장 레미콘 타설 차질 불가피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의 폭격이 아닌 차량용 반도체 폭격이 건설기계를 덮쳤다.
지난해 전 세계 자동차 시장을 강타한 차량용 반도체 ‘ECU(Electronic Control Unit, 엔진용 전자제어장치)’의 수급난이 해를 넘겨서도 지속되면서 건설기계 차량에도 그 피해가 누적되고 있는 것.
특히 일반 상용차보다 험로 주행이 많은 건설기계 차량의 특성상 차량 하부에 부착된 ECU 파손이 잦아 주기적인 점검 및 교체가 필수적인데, 수급난으로 즉각적인 교체가 이루어지지 않아 문제는 더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실제 교체 부품이 없어 운행을 중단하는 건설기계 차량이 빠른 속도로 불어나고 있는 상황으로 업계에선 이 같은 상황이 장기간 지속될 경우 건설현장에도 큰 파장을 일으킬 것으로 우려하는 목소리가 대두되고 있다.
현재 차량용 반도체를 구하기 힘든 일차적 원인은 주요 완성차 업체의 빗나간 수요 예측에서 비롯됐다는 지적이다.
이들은 코로나19 바이러스 여파가 본격화된 2020년 3월 이후 차량 판매가 급감할 것으로 보고 부품 주문량을 선제적으로 줄였다.
이에 따라 차량용 반도체 제조사들도 가동률을 줄이게 된 것이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완성차 수요는 빠르게 회복됐고. 2020년 말부터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되면서 수요가 급증, 덩달아 차량용 반도체 주문도 폭주하면서 공급난이 빚어졌다.
설상가상으로 화재 사고와 한파 등의 여파로 공장이 멈춰 서면서 생산 라인도 제대로 돌아가지 못했다.
결국 이 여파로 믹서트럭을 비롯한 건설기계 차량이 멈춰서는 사태가 발생하기에 이른 것.
최근 건설기계 관련업계에 따르면 레미콘 믹서트럭, 콘크리트 펌프트럭 등 ECU 파손이 잦은 건설기계 차량을 중심으로 운행 중단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한국노총 레미콘운송노동조합이 지난해 11월부터 전국의 조합원을 대상으로 ECU가 장착된 2011년식 이후 모델의 피해 사례를 접수한 결과, 지금까지 믹서트럭에서 300여대, 펌프트럭에선 130여대의 차량에서 이 ECU 파손이 발생한 것으로 집계됐다.
한노총 관계자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말까지 운행을 중단하는 믹서트럭과 펌프트럭은 모두 합쳐 1000대를 거뜬히 넘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장 하루가 급한데 기계 멈춰서면 어쩌나”
건설기계임대업계, 완성차업계의 미온적 대응에 분통
한노총 소속의 믹서트럭과 펌프트럭이 각각 8000여대, 6300여대인 점을 감안하면 100대 중 7대의 차량이 ECU가 없어 멈춰서는 셈이다.
건설기계 차량 소유주는 대부분 영세한 임대업자나 1인 사업자들이 대부분이다.
ECU 교체 지연으로 인한 운행 중단은 그대로 생계에 직결될 수밖에 없다.
믹서트럭을 운행 중인 A씨는 “믹서트럭 한대 가격이 1억5000만원이다. 매달 지급하는 할부와 각종 유지비용까지 고려하면 단 하루라도 쉬면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된다. 조심스럽게 운전을 하고 있긴 하지만, ECU 수급난이 언제 해소될지 모른 상황에서 차량을 운행하는 게 두렵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자동차 제조업체의 미온적인 대응을 생각하면 화가 치밀어 오른다.
국내 상용차 시장의 절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는 제조업체 H사는 지난해 두 달 넘게 이어진 건설기계업계와 소유주들의 ECU 교체 민원에 무관심으로 대응하다, 올해 들어서야 차량정비 계열사를 통해 교체 서비스를 시작했다.
그나마도 턱없이 부족한 재고로 ‘생색내기’에 불과하다는 게 건설기계업계와 소유주들의 판단이다.
업계에서 추정한 ECU 교체 배정분(수리용)은 약 150개 정도.
이 회사가 판매해 운행 중인 건설기계 차량이 4만8000여대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1%도 못 미치는 수량이다.
언제 정비소에 입고될지 예상도 할 수 없다.
H사는 해외에서 조달받은 ECU 부품을 일반 승용차에 우선 배정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건설기계업계 관계자는 “ECU가 파손되면 차량이 제어가 안 된다.
건설기계 차량은 중량이 많이 나가 도로주행 중 파손되기라도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면서, “사고 예방을 위해서라도 좀더 신속한 교체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H사 관계자는 “고객의 불편함을 해결하도록 노력 중”이라며, “ECU 수급난이 계속될 경우 설계적으로 풀어가는 방안도 마련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한편, 건설업계도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ECU 수급난의 장기화로 운행 중단되는 건설기계 차량이 늘어나면 레미콘 타설이나 자재운반 등에 피해를 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미 지방 건설현장은 우려 단계에 접어들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건설기계 차량이 밀집된 수도권과 달리, 지방은 차량이 여유가 있는 편이 아니다”며, “특히, 최근 유류값 인상 여파로 건설기계 임대료가 높아진 상황에서 ECU 사태까지 본격화되면 고정비가 대폭 상승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ECU는 무엇이고 왜 문제인가
차량하부 설치, 오염과 파손에 취약
ECU(Electronic Control Unit, 엔진용 전자제어장치)는 엔진, 자동변속기, ABS(Anti-lock Brake System) 등 차량의 주요 기능을 자동 제어하는 반도체로, 차량 운행을 책임지는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한다.
ECU가 파손되면 차량 운행이 불가능해진다.
자동차는 더 이상 내연기관 동력으로만 움직이는 제품이 아니다.
단순한 이동 수단에서 IT와 결합한 종합 편의 장치를 구비한 생활공간으로 변모하고 있기 때문에 과거의 자동차가 운송 기능에 충실한 기계 장치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안전과 편리함 등에 대한 수요를 반영하며 다양한 전자기기를 구비하고 있다.
특히 오늘날의 차량제조시스템은 구동을 위한 엔진과 동력 전달 장치뿐만 아니라 운행 정보, 차량 상태, 첨단 운전자 지원 시스템(ADAS) 등을 구현하기 위한 첨단 장비를 장착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차량용 반도체는 온도, 압력, 속도 등의 정보를 측정하는 센서와 엔진, 전자기기 등을 조정하는 전자제어장치 등에 사용되는 핵심 부품이다.
즉 난방부터 엔진 제어까지 반도체가 쓰이지 않는 곳이 없는 실정인 셈이다.
때문에 자동차 한 대를 만드는 데에는 보통 반도체 300개 정도가 필요한데 최근에는 전기차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 숫자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차량용 반도체 ECU는 일반 차량은 물론 굴착기·지게차·콘크리트 믹서트럭·콘크리트 펌프트럭 등 모든 기종의 건설기계 차량에도 탑재된다.
건설기계 차량에는 2011년식 모델부터 적용되기 시작했다.
국내에 공급되는 ECU 대부분은 델파이 제품으로,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공장으로부터 조달하고 있다.
건설기계 차량의 ECU 파손 원인은 여러 가지다.
우선 건설현장, 비포장도로 등 잦은 험로 주행이 꼽힌다.
ECU는 건설기계 차량 하단부 앞바퀴 주변에 설치되어 있다.
플라스틱 보호덮개로 감싸여 있지만 공사장 주변의 돌이나 콘크리트 덩어리 등 단단한 물체가 튀면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게 운전자들의 설명이다.
건설기계특성상 험로 주행 및 장기 운행
새 부품 교체 불구 재파손 빈번해
또한, 믹서트럭·펌프트럭 등 건설현장을 자주 들락날락하는 건설기계 차량은 현장 입구에 설치된 세륜기를 통과하는 과정에서 파손되는 경우도 적잖게 발생한다.
세륜기는 건설기계 차량의 바퀴나 하부에 낀 이물질을 세척하는 장비인데, 여기서 강하게 뿜어져 나오는 물줄기가 보호덮개 안쪽으로 침투하면 ECU 파손을 일으킨다.
정밀기기인 ECU는 습기에 취약하다.
장시간 운행으로 인한 고온의 열도 ECU 파손의 원인이 된다.
특히, 정차 시에도 레미콘 타설 등 추가 작업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시동을 켜 둬야 하는 믹서트럭, 펌프트럭 등은 잦은 파손을 일으킨다.
이렇다 보니 새 부품으로 교체해도 바로 다음날 다시 파손될 수 있다는 게 업계의 정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ECU 파손은 단순 차량 고장이 아닌, 심각한 안전사고로도 이어질 수 있다. 운행 도중 파손되면 차량 통제가 어려워진다는 점에서다.
실제 지난달 경기도에선 레미콘 공장을 떠나 인근 건설현장으로 향하던 믹서트럭이 ECU 파손으로 도로 주변을 이탈해 멈춰서기도 했다.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지만, 주행 중인 차량과 충돌했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뻔했다.
도로를 주행하는 건설기계 차량들은 대부분 10t이 넘고 25t에 달하는 것도 있다.
이와 관련, 건설기계업계 관계자는 “아무리 수급 상황이 안좋다고 하지만, 국민의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제조사나 정부는 건설기계 차량의 ECU 파손에 대한 대책을 만들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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