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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회암 건축 석재가 많은 코카서스 3국을 둘러보고 …

작성일 : 2022.12.02 04:02

2020년 12. 7일경 코로나가 처음 발병 확산했을 때는 걸리면 정말 죽는 줄 알았다. 그 이후 1년이 지날 무렵 백신들이 속속 개발되면서 한시름 놓은 듯했고, 종종 보도되는 부작용 소식은 너무 안타깝기만 했다. 그리고 무조건 3회 이상을 맞아야 소위 이동·출입 자유가 보장되니 안 맞을 수도 없다. 해를 보내면서 다행히 바이러스는 변종을 거듭했고, 오미크론이 우세종이 되면서 내 몸의 면역도 잘 적응되는 것을 느꼈다. 그리고 2022년 8.13∼20 독일 주변 3개국을 여행하면서 약간의 자신감도 가질 수 있었다. 이를 계기로 6월에 예약해둔 코카서스 3국 여행(9/13∼27)은 방문국의 정보를 계속 체크해보니 확진자는 20명/일 내외, 사망률은 높았지만, 안전하다고 판단하여 지인과 함께 출발을 결정하였다. 처한테는 코로나에 걸리고 안 걸리는 것은 접촉자와의 확률 문제라고 했고, 이젠 코로나 겁나서 해외여행 못 가면 평생 못 간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행 가방에는 내과 전문의인 작은딸의 조언과 후일의 안전을 위해 프로폴리스, 비상약품, 영양제 등을 준비하면서 출국 날짜를 기다렸다. 

코카서스 3국은 서아시아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한 조지아, 아르메니아, 아제르바이잔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 3국은 19세기 초 러시아의 영토가 되었고, 러시아 혁명의 혼란기에 잠시 각국은 독립했으나 1922년 소비에트 연방 결성 때 자캅카스 소비에트 연방 사회주의 공화국이라는 이름으로 소련을 이루는 하나의 단위로 통일되었다. 1936년에 각각 그루지야(독립 후 조지아로 국명 변경)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르메니아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아제르바이잔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으로 별개의 소비에트 연방의 공화국이 되었다.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 이전까지 이들 3국은 아시아 그리고 러시아 문화의 강력한 영향을 받았다. 코카서스 3국은 모두 아시아와 유럽의 경계인 코카서스 산맥에 위치하여 지리상으로는 아시아로 분류되지만, 문화, 종교, 역사적으로 서아시아보다는 동유럽에 더 가깝다. 그러므로 가끔 동유럽과 문화 교류를 하기도 하며, 축구 국제 경기에 있어서도 유럽 축구 연맹에 편성되어 있다. 또한, 아시안 게임이 아닌 유러피언 게임에 참가한다. 한편, 종교적으로 조지아는 동방정교(東方正敎), 아르메니아는 아르메니아 정교(正敎), 아제르바이잔은 이슬람교이다. 문자의 경우 조지아와 아르메니아는 고유의 문자를 가지고 있으나, 아제르바이잔은 본래 아랍 문자를 써오다가 소련 해체 이후에는 다시 로마 문자를 사용하고 있다. (위키백과 인용) 금번 여행의 목적은 고대 실크로드를 따라 낙타 카라반사라이의 지나간 행적을 더듬어 보고 3국의 문화생활, 종교 전파 과정 등을 살펴보는 것이다.
 
첫 여행지는 아제르바이잔이다. 입국하려면 비자가 필요했고, 직항이 없어, 인천-두바이-바쿠 경로로 실제 비행시간만 약 14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비행 중 적절한 취침과 음식조절로 시차 극복과 몸 상태를 조절하였다. 도착 후 현지 안내 보조 가이드(라시마, 女)가 한국어는 물론이고, 5개 국어를 잘해서 깜짝 놀랐다. 첫 방문지는 아테시카 사원의 조로아스터교(拜火敎) 인들의 기도처와 영원한 불도 보았다. 카스피해 해변식당에서 잉어찜과 철갑상어 요리로 에너지를 충전한 후, 원시생활의 혼이 담긴 고부스탄의 암각화 지역, 15세기 건축의 진주인 시르반샤 궁전, 12세기 성곽도시 방어용이고, 슬픈 전설이 있는 메이든 타워, 18세기 후반 건축물 쉐키 칸 사라이 여름 궁전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약 30년 전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되면서 당시와 현대 모습이 여러 곳에서 공존하였고, 전인구의 30%가 산다는 바쿠 중심가에 인적이 드문 명품매장도 보았다. 그 외에 부(富)의 편중, 모양이 비슷한 단독주택, 집 앞에 노출된 가스 배관, 보수가 필요한 옛 아파트 등 독립 후 그대로의 모습들, 또한, 도시로부터 조금만 떨어지면 도시 사막화 진행, 모래바람이 강한 환경, 길옆에 원유가 나오는 광경 그리고 공산당 시절에 살아왔던 60대와 30대 신세대가 함께 공존하여 살아가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두 번째 여행지는 조지아로 개인 수화물을 끌고 국경을 걸어서 입국하였다. 이곳은 항아리 와인으로 유명한 나라이고, 사막화는 없고, 나무도 많았으며, 들판에는 풀도 많아 아제르바이잔과는 사뭇 다른 모습을 느꼈다. 볼거리가 많아 8일 정도 시간을 보냈다. 실크로드 교역 중심도시인 시그나기市, 보드메 교회, 다비드가레자 동굴수도원, 해발 2,200m에 지어진 게르게티 삼위일체 성당, 고리에 있는 스탈린 생가, 고대 동굴 도시 우플리스치케, 콜리스 왕국 수도인 쿠타이시, 중세 조지아 시대의 걸작 겔라티 수도원, 11세기에 처음 지어진 바그라티 교회, 마치 부산 해운대와 비슷한 흑해의 진주라는 바투미 해변 산책과 투어, 흑해 생선구이와 와인으로 다시 에너지를 충전했다. 그리고 8시간 이동하여 해발 1,500m에 위치하고 조지아 스위스로 불리는 메스티아 전통 마을에서 꼬시끼(디펜스 타워)를 보았고, 수도인 트빌리시의 발전상과 야간에 번화가를 걸으면서 그들의 문화도 느꼈다. 
또한, 6세기에 지어지고 예수님의 옷자락이 보관되었다고 하는 스베티츠호벨리 성당 등을 보면서 기독교 문화를 받아들이는 과정의 면면도 보았다. 그리고 주택의 외벽은 응회암(화산재가 쌓여 굳어져 만들어진 퇴적암) 석재가 많이 사용되고 있음도 확인했고, 마지막 날은 이곳에 하나뿐인 서울식당에서 김치찌개, 불고기와 J 소주(10달러/병)를 마시면서 동행한 여행자들과 모처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마지막 3번째 여행지 아르메니아는 조지아 입국과 마찬가지였는데 현지 가이드(아르메네, 女, 서울대 6개월 어학연수)의 재치로 다소 수월한 입국이 되었다. 이곳 역시 나무가 많았으며, 바다가 없어서 물류에 애로가 많다고 들었고, 거대한 세반 호수가 있다. 수도를 12번씩이나 옮길 정도로 국가안보가 취약했고, 1915년 터키의 대학살 사건으로 12개 마을이 없어지는 슬픔이 많은 나라로 기억된다. 자국의 산업은 희귀 광물자원 등이 많으나 개발이 미진하고, 제조업이 발달하지 않아 실업률이 상당히 높고, 국민들은 해외로 많이 나가 있다고 한다. 이곳의 관공서와 주요 건물은 대부분 응회암 석재로 지어졌다. 마테나다란 고문서 박물관, 노이 코냑양조장 시음회, 성마더 성당, 즈바르트노츠 성당, 게그하르트 동굴사원, 주상절리 아짜트 계곡, 아르메니아 추모 학살공원, 전통시장, 조각공원 등도 둘러보았다. 끝으로, 조지아 항아리 와인을 사랑하고, 유학파답게 해박한 식견으로 가이드해 준 블라디미르 박(朴)님의 수고가 컸고, 편한 잠자리와 여유 있는 식사(와인 제공+동행자 와인 기부) 등도 좋았다. 그리고 이동 중 2시간마다 화장실 사용(모두 유료) 배려도 기억에 남는다. 국력이 분열되고, 민심과 정치가 불안하면, 강대국은 기회를 노려 침략한다. 이번 여행을 통해서 절실하게 느낀 점이다. (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