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1.03 03:10 수정일 : 2023.01.03 03:13
서언
시멘트의 발달과정에 대하여는 이전 112회(시멘트의 발달사) 강좌에서 기술한 바 있다. 그러나 일본의 후지와라 외 3인이 저술한 「콘크리트 이야기」를 보다 보니 시멘트의 탄생과정 등에 대하여 알기 쉽게 설명하고 있어 본 강좌로부터 몇 회에 걸쳐 그와 같은 내용 및 기타내용도 추가하여 소개해 보고자 한다.
태고의 시멘트
시멘트의 주요한 원료는 석회암이다. 아마도 옛날에 원시인들은 석회암 위에서 모닥불을 피웠을 것이다. 그런데 그곳에 비가 왔다고 하면 석회암은 녹았을 것이고, 얼마 지나 녹았던 석회암이 다시 굳어지기 시작했을 것이다. 이것을 보고 옛날 사람들은 아마 「이것을 사용하자!」라고 외쳤을 것이다.
석회석을 구우면 생석회가 되고, 이것에 물을 가하면 소석회가 된다. 소석회는 공기 중에서 탄산가스를 흡수하여 원래의 탄산칼슘으로 되돌아가 굳어지게 된다. 아마도 옛날 사람들은 그 원리를 잘 알고 있지는 못하고 그저 경험적으로 석회석의 이용방법을 생각했을 것이다. 또한, 이수석고인 석고석의 경우도 석고를 구우면 분말상의 반수석고가 되는데, 이것을 물로 반죽하면 원래의 이수석고로 되돌아가 경화한다. 이 현상도 아주 옛날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다. 이때 석회석의 탈탄산 반응은 700℃ 전후이고, 이수석고가 반수석고로 되는 온도는 150℃ 전후이므로 불을 이용하는 온도 측면을 고려하면 아마도 소석고가 먼저 사용되지 않았을까 하는 추측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증명하는 예가 소석고 및 소석회를 혼합 사용한 피라미드 등 이집트의 유물에서 알 수 있다. 즉 사진 1과 같은 이집트 기자의 케옵스(쿠프), 케프렌(카프레), 미케리노스(맨카우레)의 3대 피라미드 군 중에서 각 피라미드의 석재 조적부 및 케프렌(쿠프왕의 동생이며 다음 왕) 피라미드의 상부에는 이러한 모르타르가 아직도 남아있다. 즉 하부는 카이로 시민들이 자기네 집을 짓기 위해 뜯어갔지만, 상부는 너무 높아 못 뜯어가 아직도 남아있는 것이라고 여행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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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 석회석을 소성하여 만든 소석회가 시멘트로 이용되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시대이다. 고대 그리스의 유물이나 유적에서 소석회와 산토린(Santorin) 섬의 화산재를 섞어 만든 물잔이나 모르타르를 사용한 흔적이 남아있고, 그 이외에 석회 마그네슘(돌로마이트) 모르타르를 사용한 흔적도 있다. 이와 같은 시멘트는 공기 중에서는 경화하지만, 수중에서는 경화하지 않기 때문에 기경성 시멘트라고 불리 운다. 기경성 시멘트는 물에 의해서는 굳어지지 않지만, 약간 굳어진 후에도 물속에 넣어두면 다시 녹아 붕괴된다. 그래서 댐 등의 수리 구조물에는 이용하지 못하였다.
그러면 물에서도 굳어지는 시멘트 즉, 수경성 시멘트가 개발된 것은 언제부터일까? 그것은 바로 로마 시대이다. 로마인들은 나포리 만 주위의 베스비우스(Vesuvius) 산 또는 포죠리(Pozzuli) 마을 근처에서 채취한 핑크색 모래{포조라나(Pozzolana)라고 불렀음}를 석회와 혼합하고 벽돌 부수러기 등과도 함께 섞어 콘크리트를 만들었는데, 이때 놀랄만한 것은 그 들이 이제까지 만든 것보다 강한 콘크리트가 되었다는 것이다. 그것은 물에도 강했다.
실은 그 핑크색 모래는 화산재로 실리카나 알루미나가 포함되어있어 그것이 석회와 화학적으로 상온에서 결합하는 포졸란 반응으로 경화하는 것이었다. 로마 사람들은 그런 원리는 알지 못하였겠지만, 거푸집 속에 부어 넣는 콘크리트로, 건축구조물은 콜로세움(Colosseum), 토목 구조물인 수도교 등 거대한 건조물에 다량 사용하여 융성한 로마제국을 만들었다.
현대 시멘트로의 발전
암흑시대라고 불려지는 중세에는 시멘트에 있어서도 겨울과 같은 시대로 오랜 기간 발달의 발자취는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근대에 접어들어 본격적으로 막을 연 것은 산업혁명이다. 산업혁명을 처음 착수한 것은 영국인데, 이 영국을 주 무대로 드디어 시멘트의 개발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그 선구자는 영국의 토목기사 죤 스민튼(John Smeaton)이다. 1756년 스민튼은 영국 남방의 암초 위에 있던 에디스톤(Eddystone) 등대의 재건을 명 받았다. 즉, 목조였던 선대의 등대가 화재로 소실 되었기 때문에 이 재건을 석조로 할 계획이었다. 그런데 로마 시대의 시멘트로는 등대의 근원부(기초부) 및 석조 사이의 부착이 약해서 영국 해협의 거친 파도에 씻겨지게 되어있었다. 그래서 스민튼은 그 부분을 내구성 있는 모르타르로 굳히려고 했는데, 문제는 수경성이 있으면서 해수의 작용에도 강한 시멘트의 획득이었다.
스민튼은 각지로부터 각종 석회석이나 화산재를 들여와 많은 실험을 진행하였다. 그 결과 점토분을 포함한 연한 석회석과 이탈리아산의 화산재를 조합하면 수경성이 우수해지고 해수의 작용에도 강한 시멘트가 되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때까지 양질의 시멘트는 순도가 높은 석회석으로만 얻어진다고 믿었기 때문에, 역으로 점토분을 포함한 불순 석회석이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밝혀졌다는 것은 매우 큰 의미이었다. 점토에도 실리카라든가 알루미나 등의 시멘트 경화에 필요한 성분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 후 비교적 짧은 시기에 1756년 영국의 파커(Parker:로만 시멘트), 1811년 프로스트(Frost) 등을 중심으로 얼마간의 시멘트가 개발되었지만, 그것들은 모두 점토를 포함한 석회석을 이용했기 때문에 스민튼의 시멘트 영역을 벗어나지 못하였다. 그 사람들이 개발한 시멘트는 어찌했든 천연의 점토 혼입 석회석을 이용하였기 때문에 천연 시멘트라고 불려졌다.
그런데, 점토분을 적당히 포함한 석회석은 어디에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일반적인 석회석에 점토를 인공적으로 넣어주면 되지 않을까라고 처음 생각한 사람은 1818년 프랑스의 비카트(Vicat) 였다. 그는 서둘러 많은 실험을 진행하였다. 석회석을 구워 소석회로 만든 다음 그것을 점토와 섞어 재차 소성하였다. 이렇게 하면 천연 시멘트에 필적할 만한 시멘트가 얻어질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인공 시멘트의 탄생인 것이다.
그리고, 1824년에는 영국의 벽돌공인 조셉 아습딘(Joseph Aspdin)이 “인조석 제조법의 개량”으로 시멘트 제조 방법의 특허를 얻게 되었는데, 그 시멘트를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이름을 붙였다. 현재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것이 포틀랜드 시멘트로서, 그것을 발명한 사람이 아습딘이라고 말하였기 때문에 그 역시 현대적인 시멘트의 발명자가 된다. 그러나 아습딘의 시멘트 제조 방법은 비카트의 방법과 거의 변화가 없었고 품질도 얼마 향상되지 않았다.
석회석과 점토의 비율을 어떻게 할까? 이것을 어느 정도의 온도로 소성할까? 하는 것이 시멘트의 품질을 크게 좌우하지만, 이것들의 조건을 여러 각도에서 실험하여 결국 강도가 우수한 시멘트의 개발에 성공한 사람은 같은 영국의 죤슨(Johnson)이다. 아습딘의 특허로부터 약 20년 후의 일이다. 현재의 포틀랜드 시멘트의 제조 방법은 이때 처음으로 확립된 것이다.
이와같이 넓은 의미에서 시멘트의 역사는 9000년도 넘게 장구하지만, 현대적인 시멘트에 한정하게 된다면 그 역사는 대략 200년 정도로 짧고, 비교적 새로운 재료라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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