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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년 전, 쌍용 C&E에서의 수습 시절을 회고하며...

작성일 : 2024.06.10 09:27 수정일 : 2024.06.10 09:30

세월은 빠르게 흘러가면서 우리의 삶을 어루만지고 지나간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는 과거를 되돌아보게 되고, 그 속에서 우리의 성장과 변화를 되새기게 된다. 과거에 근무했던 동료들의 얼굴과 그때의 일들이 여전히 우리의 기억 속을 빠르게 달군다는 것은 곧 세월이 우리의 삶을 흐르게 만든다는 증거이다. 그리고 세월이란 나이만큼이 바로 우리의 인생 속도라는 말은 마치 어제와 오늘의 차이가 보다 명확해지듯, 세월이란 바로 우리의 삶을 한순간 한순간 지나가게 만드는 것이다. 이러한 세월의 속도에 따라 우리는 중년을 맞이하면서 무엇을 먼저 챙겨봐야 할지를 고민하게 된다. 이는 우리가 더 나은 미래를 위해 준비하고, 더욱 풍요로운 삶을 살아가기 위한 필수적인 단계인 것 같다.

그리고 이러한 세월이 흘러간 흔적을 찾아가는 여정은 때로는 우리를 과거의 향수로 이끌어가기도 한다. 41년 전 쌍용 C&E 동해공장(舊쌍용양회, 동해시 삼화동)에서의 청년 시절을 회상하며, 건설의 열기와 열정이 넘쳤던 그때의 현장을 다시 한번 떠올려보는 것은 뜻깊은 경험이 될 것이다. 이번에 지인의 배려로 묵호의 해안 전망이 좋은 아파트 게스트하우스에서 처와 함께 변화가 가득하고 역동적인 동해시(천곡동굴, 도째비골 스카이밸리, 묵호등대, 논골담길, 해랑 전망대, 어달항, 두타산 삼화사, 무릉계곡, 관음정, 옛날에 살았던 신혼집과 사택 외)와 삼척시(환선굴, 추암 촛대바위, 출렁다리, 조각공원 외)를 둘러보고, 지역에 맛집을 찾아다니며(물회, 칼국수, 곰치국 등) 과거의 족적을 찾아보는 4박 5일(2024년 4월 16∼20일) 여정은 나에게 분명 새로운 감회와 추억을 안겨준 것 같다.

그리고 마침, 41년 전 쌍용사보(1983년 7월호, 대리 시절 기고)가 서재에 꽂혀 있어서 잠시 펼쳐서 원문을 적어본다. 실린 기사를 다시 읽어보는 것은 우리에게 삶의 연속성과 의미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소중한 경험이 될 것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것들을 되새겨보고, 함께한 소중한 시간을 회상하며, 우리의 이야기를 새롭게 쓰는 시작이 바로 지금인 것이다. 

사보의 타이틀은 나의 수습 시절이었고, 제목은 “남대문 시장 같던 560만 톤 증설공사 현장”이었다. 읽어 본다 『군복을 벗은 지 며칠 안 되어 어울리지도 않게 스포츠형의 머리에 양복을 빼입고 쌍용 C&E 면접시험장에서 쌍용과 생사고락을 같이하겠다고 자신 있게 대답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러나 어느새 내 뒤엔 네 명의 신입사원이 앉아 있으니, 세월의 흐름은 정말 무서우리만큼 빠르다. 입사(1978년) 전 나는 시멘트라면 검은색의 덩어리 클링커에 백색의 석고를 섞어서 분쇄하면 회색빛 나는 분말이 시멘트라는 지극히 간단한 지식뿐, 그리고 트럭에 빙글빙글 돌아가는 것은 레미콘이라는 것만 아는 정도였다. 지금 내가 시멘트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에 비하면 정말 우습기 짝이 없다. 입사가 확정된 후는 왠지 도로를 지나는 레미콘 트럭의 쌍용 심볼만 보아도 가슴이 설렜다. 더욱이 쌍용 인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된 것은 용평에서 신입사원 연수 교육을 받을 때였다. 훨훨 타오르는 캠프파이어의 그 밤은 영글어만 갔고, 총총히 쏟아져 내리는 별밤 밑에서 우리는 모두 손에 손을 잡고 쌍용의 화려한 미래를 외쳤다. 본격적인 수습 생활의 시작은 영월공장에서부터였다. 

영월공장은 동해공장이나 문경공장에 비해 서울 왕래가 훨씬 쉬워 친구들 만나는 데 큰 애로 사항은 없었다. 그리고 수습 시절이 아니면 이렇게 많은 사람과 접할 기회가 없을 것이라고 하신 한 선배 사원의 말씀을 염두에 두고 사람 사귀는 것에 비중을 두면서 현장 수습에 임했다. 각 부서를 순회하는 수습 일정 속에서 광산 막장과 연수원에서 군 시절 생사를 함께했던 소대원을 만나기도 했다. 정말 이것도 우연이라고 해야 할 런지, 또한, 품질관리실 수습 때 시멘트 품질관리의 중요한 요소인 LSF(석회포화도), SM(규산율), IM(철율)의 전개 과정을 찾는 『모듈러스 공식 유도』라는 테마를 놓고 모듈러스(modulus)의 “모” 자도 몰랐던 우리 조의 멤버들은 그 테마 해결을 위해 얼마나 괴로워했던지, 우리 조 멤버 중 법학이나 경제학을 전공했던 친구들은 이공계인 나보다도 더 괴로웠으리라. 그 테마를 우리에게 던져 주었던 야속한 선배 사원의 안경 너머의 그 무서운 시선 때문에 주말마다 가기로 했던 나의 여행 일정은 불가피하게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했다. 영월에서의 수습 마지막 날 오후, 텔렉스 실(telex)은 분주하게 돌아갔다. 노란색 종이에 타자된 인사 발령 내용을 보고, 정들었던 동료들과 서서히 한 사람씩 헤어져야만 했다. 이젠 각자 근무처로 돌아가 홀로서기 하는 것이다. 내가 발령받은 곳은 동해공장 품질관리실이었다. 영월공장을 떠나 세계 단일공장에서는 최대의 시멘트공장 동해공장을 향한 나의 발걸음은 그리 가볍지만 않았다. 그것은 신입사원으로서의 긴장감도 있지만, 증설공사가 시작되는 분주한 분위기에 자칫 소외되지나 않을까 하는 염려에서였다. 그때는 560만 톤 증설공사 초창기라 정말 직원 모두가 정신없이 현장에서 분주하게 움직이고, 슈퍼 바이들과 정기 회의, 부서 간 협력 회의 등 정말 남대문 시장을 방불께 했다. 내 직장생활의 첫 출발지가 이렇게 바쁜 현장이었다는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군에서 소대장, 관리관 직책을 수행하면서 기획하고 판단하는 능력을 익힌 나에게는 그나마 다른 사원들 보다는 좀 낳지 않았나 생각이 든다. 품질관리실에 처음 들어섰을 때 나는 타 부서 직원을 품질관리실 직원인 줄 알고 두서없이 나 자신을 소개하고 보니, 타 부서 직원이라고 해서 어색했던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난다. 2개월에 걸친 힘든 실무 수습 과정을 거치면서 시멘트에 대하여 단편적인 지식의 범위를 벗어나 학교에서 배운 이론과 현장의 경험적인 요소가 합쳐져 실질적인 지식으로 조금씩 영글어가고 있다는 것도 조금씩 느끼게 되었다. 그리고 한 포대의 시멘트가 얼마나 어렵고 힘든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지는지 새삼스럽게 느껴졌다. 이렇게 어렵게 참았던 나의 수습 시절은 나의 기억 속에 한자리를 차지하고선 가끔 나를 추억에 잠기게 만든다. 그 추억은 싱그러운 7월의 햇살과 같다고나 할까...』 글은 이렇게 마무리된다. 지금 와서 글을 읽어보니 다소 내용 전개의 어색한 부분도 있지만, 당시 불타는 청춘의 힘으로 글을 만들어서 의욕이 많이 실려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끝으로, 세월이 흘러가면서 우리는 삶의 다양한 경험을 겪으며 성장하고 변화되고 있다. 41년 전 게재된 내용을 다시 보니 정말 감회가 새롭다. 이제는 그 과거의 추억을 되새겨가며 새로운 미래를 찾아가 보는 시간인 것 같다.(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