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5.09.02 04:10
2025년 4월, 황산과 삼청산에서 찾은 쉼표 하나
2025년 4월 4일, 대한민국 정국은 유례없는 격랑 속에 있었다. 헌법재판소의 최종 판결로 윤석열 대통령이 파면되면서, 두 달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여야는 총력 대응에 나섰고,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의 관세 폭탄 소식까지 더해, 환율은 급등하고, 정치·경제 분위기는 무겁고 혼란스러웠다. 이런 시기, 나는 처와 잠시 일상에서 벗어나 중국의 명산 황산(黃山)과 삼청산(三淸山)을 둘러보는 여행길에 올랐다(4/19∼23).
황산으로 가는 길
이번 여행은 코로나19 이후 황산행 항공편이 4월에 재개된 뒤 처음 떠난 해외여행이었다. 18년 전만 해도 도로 사정이 좋지 않아 장시간 버스를 타야 했지만, 이번에는 교통 여건이 크게 개선되어 시간도 단축되고 여정 또한 훨씬 여유로웠다. 더불어 2024년 11월부터 2025년 12월까지 시행 중인 한국인 대상 무비자 정책 덕분에 입국 절차도 한결 수월해졌다. 황산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자연문화유산으로, 그 자체가 하나의 거대한 자연 조각품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바다에서 융기된 지형이 오랜 시간 풍화와 침식을 거치며 기암괴석과 안개 자욱한 산세를 빚어낸 풍경은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산 전체에는 수많은 계단과 잔도가 조성되어 있는데, 이 시설들은 약 20년에 걸쳐 완공된 것이라 한다. 거대한 바위에는 직접 돌을 깎아 계단을 만들고, 산 둘레 구간은 대부분 콘크리트로 시공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는 모습이 매우 인상 깊었다. 산 중턱 곳곳에 설치된 소화전 또한 산불 예방을 위한 세심한 배려로 느껴졌다. 물론 계단이 많아 체력적으로는 쉽지 않은 코스였지만, 그만큼 황산이 주는 감동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이다. 첫날, 케이블카장 입구에 도착했을 땐 가는 비가 폭우로 바뀌었고, 우비에 방수 커버 슈즈까지 착용하고 기다렸지만 천둥과 번개로 인해 케이블카가 운행을 멈췄다. 부득이하게 호텔에서 반나절을 보내게 되었지만, 한편으로는 다행이었다. 먼저 올라간 여행객들은 케이블카 선로에 약 2시간 갇혀 있었다고 한다. 여행사 측은 이례적으로 점심 특식과 술을 제공했다. 나는 호텔 비상계단을 오르내리며 여기서도 1만 보 걷기를 실천했고, 그 덕에 다리에 탄력이 생겼다. 다음 날도 비가 계속되긴 했지만 천둥과 번개가 없어 케이블카(옥병上–태평下 구간)와 모노레일(천해–곡저 구간)이 정상 운행되었다. 우비를 입고 그리던 황산 서해 대협곡을 종주하며, 안개에 휩싸인 기암괴석 사이를 걷는 감동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코스는 옥병 케이블카를 시작으로 연화정, 백보운제, 해심정, 천해, 곡저, 다시 천해를 거쳐 광명정, 비래석, 배운정을 지나 태평 케이블카를 타고 하산하는 순서였다. 산장 호텔에서 점심을 먹은 후, 멀리 광명정이 잠깐 모습을 드러냈다. 하산 시 이용한 태평 케이블카는 100인승 규모로, 많은 여행객들에게 여유를 선사했다. 황산 시내는 점차 현대화되고 있었다. 오토바이 전용 차선이 따로 마련되어 있었고, 추위와 비를 막기 위한 보호 커버가 인상적이었다. 리양(黎陽)에서는 옛 거리가 상당 부분 현대화되어 있었으며, 신안강 주변 고촌락(古村落)은 외형은 전통을 유지한 채 내부는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된 모습이었다. 특히, ICT, 영상, 로봇 기술이 융합된 ‘휘운가무쇼’는 무대 상황에 따라 앞좌석이 좌우로 움직이며 관객의 몰입을 이끄는, 그야말로 문화기술의 정점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삼청산의 신비로움
황산과 함께 이번 여정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는 삼청산이었다. 예로부터 신선의 산이라 불려온 이곳은 신비롭고 환상적인 분위기로 여행자를 매혹시켰다. 둘레 길은 모두 콘크리트로 포장되어 있었지만, 자연스럽게 풍경 속에 녹아들어 전혀 위화감 없이 감상할 수 있었다. 금사 케이블카를 타고 남청원 풍경구까지 둘러보며 삼청산의 절경을 마음껏 즐겼다. 하루 동안 쌓인 피로는 현지 마사지로 풀었는데, 특히, 무릎 통증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매우 만족스러웠다. 삼청산은 황산의 웅장하고 거칠며 신비로운 분위기와는 또 다른, 부드럽고 여성적인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유리다리는 없었지만, 스릴 넘치는 잔도가 색다른 재미를 더해주었다.
고성(古城)과 전통문화의 조화
황산시 인근의 휘주(徽州)는 전통과 역사의 향기가 고스란히 살아 숨 쉬는 고장이었다. 그중에서도 휘주 고성은 중국 4대 고성 중 하나로, 여러 겹의 성곽과 ‘옹성’ 구조는 외침에 대비한 전략적 방어 설계가 돋보였다. 2008년에 개관한 휘주 문화박물관은 전통 건축과 유물을 정성껏 보존하려는 노력이 엿보였고, 송나라 시기부터 이어져 온 휘주의 역사와 문화를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전통 건축물의 구조, 재료,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미감과 철학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고, 휘주라는 지역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힐링의 맛, 여행의 마침표
이번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은 현지 음식이었다. 휘주 요리 박물관에서 맛본 전통 요리는 내 입맛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여행 중 접한 현지식은 대부분 중국식 코스 요리로, 기본 10여 가지 이상의 반찬이 차려졌고, 그중에서도 황산의 특산물인 ‘모두부(毛豆腐)’는 담백하면서도 깊은 풍미가 인상 깊었다. 낫도나 청국장처럼 발효된 단백질 식품이지만, 향과 질감이 매우 부드러웠다. 자연을 걷고, 전통을 느끼며, 건강한 식사를 통해 몸과 마음이 치유되는 시간이었다. 이번 중국 탐방은 자연과 인공, 고대와 현대가 충돌하지 않고 절묘하게 어우러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 소중한 경험이었다. 산속 콘크리트 구조물이 자연과 조화를 이루듯, 도시 속에서도 자연과 어떻게 공존할 수 있을지를 다시금 돌아보게 했다. 다음 여행지로는 중국의 숨은 보석, 천저우 망산(莽山)을 계획하고 있다. 유튜브를 통해 사전 지식을 충분히 쌓은 뒤 떠날 예정이며, 이번 여정은 끝이 아닌 또 다른 시작이 될 것이다. 천천히, 그리고 차분하게 다음 여행도 함께 그려나가고 있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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