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건설현장을 위협하는 ‘레미콘 공급 절벽’ 해법은? 현장배처플랜트?
작성일 : 2025.12.03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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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미콘사 반발에 현장배처플랜트 도입 ‘멈칫’
업계전문가 “미뤄졌지만 결국 갈 수 밖에 없을 것”
삼표레미콘 풍납공장이 올해를 끝으로 문을 닫으면서 서울 도심의 레미콘 공급망이 흔들리고 있다.
1970년대부터 도심 개발의 핵심 기반이었던 레미콘 생산기지들이 순차적으로 철수함에 따라 서울은 이제 콘크리트를 ‘도심 밖’에서 들여와야 하는 도시가 됐다.
생산지와 현장의 물리적 거리가 멀어지면서 콘크리트 타설의 ‘골든타임’이라 불리는 90분을 지키기 어려운 현장이 늘고 있다.
2022년 성수동 삼표산업 공장이 철거된 데 이어 이달말 송파 풍납공장이 문을 닫으면 서울 시내에는 천마콘크리트 세곡공장과 신일씨엠 장지공장 두 곳만 남는다.
3기 신도시 개발에 따른 레미콘 공장 ‘대이동’도 예고됐다.
고양 창릉 3기 신도시 개발은 대표적이다.
이곳에는 삼표, 아주, 우진 등 기업들이 레미콘을 생산‧공급하고 있다.
한국노총 소속 레미콘운송노동조합(전국레미콘운송연합회) 관계자는 “3기 신도시 개발로 레미콘 공장이 밀려나고 있다. 고양 창릉에서는 일부 기업들의 부지가 수용됐다”며 “이렇게 되면 광화문 일대 레미콘 공급은 사실상 중단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고양시의 한 레미콘업계 관계자도 “신도시가 들어서면 소음, 분진 민원이 폭증하고 각종 환경 규제도 강화된다”며 “레미콘 공장은 버틸 수 없다”고 토로했다.
고양 창릉뿐 아니라 남양주 왕숙지구와 인천 계양, 하남 교산, 부천 대장 등에 있는 레미콘 제조사도 신도시 개발 여파에 휘청일 것이라는 예측이 나온다.
이 가운데 남양주 왕숙지구와 인접한 진관일반산업단지 내 레미콘 제조사들은 과거
진접지구 개발로 이주된 상황이지만, 또다시 이전을 검토해야할 것으로 예상됐다.
현장 배처플랜트 설치, 이해관계자 반발 ‘난제’
레미콘공급망 불안정은 최종 소비자에게 부담전가
더 큰 문제는 레미콘 공급망 붕괴다.
서울 강남권은 물론 종로구, 서대문구, 중구, 성북구 등은 세곡‧장지 공장과 거리가 멀고 교통 정체가 심한 지역이다. 90분 타설 원칙에 맞춰진 레미콘의 시간 내 운반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레미콘 공급량도 관건이다.
레미콘업계에 따르면 압구정 3구역의 레미콘 추정 수요량은 80만㎥, 은마아파트는 81만㎥ 수준이다.
서울 시내 레미콘 생산량이 2021년 335만㎥에서 2026년 132만㎥로 60%이상 확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 상황을 고려할 때 레미콘 수요가 공급량을 뛰어넘는 대란이 발생할 수 있다.
이로 인해 도심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중단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이미 3년전 삼표레미콘 성수공장이 사라질 때 45년간 서울의 주요 공공·민간 개발 현장에 레미콘을 공급해온 도심 공급망의 붕괴를 상징한다고 전문가들은 내다놨다.
현장 내 임시 생산시설인 ‘배처플랜트’ 설치를 제안하지만, 환경규제와 인허가 절차로 현실화는 쉽지 않다.
미세먼지·소음·토사 유출 등의 이유로
도심 내 설치는 제한되고, 허가를 받더라도
주민 민원으로 가동이 중단되는 사례가 적지 않다.
레미콘사와 운송노조의 저항도 만만치 않다.
최근 광운대 역세권 개발에 현장배처플랜트 운영을 결정했던 현대산업개발은 운송노조의 반발에 현장배처플랜트 설치 계획을 포기했다.
서울시와 정부가 검토 중인 ‘우선 납품제’나 ‘분할 납품 기한제’ 같은 제도적 보완책도 실효성에는 한계가 있다.
공급량 자체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납품 순서만 조정하는 것은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이은형 대한건설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레미콘 공급망 불안정은 건설 프로젝트 지연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고, 결국 분양받는 일반 국민들이 피해를 입게 된다”며 “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대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도시정비사업, 90% 이상이 레미콘 의존
‘보이지 않는 인프라’ 붕괴 경고, 해법 시급
통계에 따르면, 서울 내 도시정비사업 수요가 서울 전체 레미콘 생산량의 약 91.9%를 차지한다.
그만큼 재건축·재개발의 진척 속도가 레미콘 공급에 좌우될 수밖에 없다. 공장이 두 곳뿐인 상황에서, 한 곳이라도 가동 중단이 발생하면 도심권 현장 전체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전문가들은 단순히 공장 부지를 이전하거나 민간에 맡길 사안이 아니라, 도시 인프라 차원에서 접근해야 할 문제라고 지적한다.
서울시가 나서 레미콘 공장 부지의 존치 혹은 대체 부지 확보를 지원하고, 배처플랜트 설치 기준을 합리적으로 완화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국책연구기관의 모 연구위원은 “지금은 레미콘사와 운송노조 반발로 현장 배처플랜트 도입논의가 잠시 중단된 상태지만 결국은 방향성에서 현장배처플랜트 설치쪽으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현장배처플랜트 도입문제뿐만 아니라 물류 효율화를 위해 믹서트럭 동선 최적화, 야간 운송 허용 등 현실적 대책도 병행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부동산전문가들조차 도심 재건축 속도전이 가속화될수록, 콘크리트 공급망 안정성은 주택 공급 정책의 핵심 변수로 꼽고 있을 정도다.
이처럼 서울 내 레미콘 공장 소멸은 단순한 산업 구조조정이 아니다.
이는 서울의 고밀도 재건축 시대를 지탱할 기초 인프라의 균열이다.
도심권 레미콘 공급이 한계에 다다른 지금, 정부와 지자체가 “생산시설의 도시 내 존치 여부”를 공공정책의 일부로 다루지 않는다면, 서울의 재건축 드라이브는 공급 병목에 스스로 발목을 잡히게 될 것이란 지적이다.
3기 신도시 왕숙지구에 배처플랜트 설치 필요
LH 연구보고서, 현장배처플랜트 운영방안 제시
한편 3기 신도시 왕숙지구에 현장 레미콘 생산 설비인 배처플랜트(BP, Batcher Plant) 설치가 필요하다는 분석이 나와 업계관계자들의 이목을 끌고 있다.
LH토지주택연구원이 최근 발간한 ‘3기 신도시 등 공공사업 광역 레미콘 현장 배처플랜트 운영 방안’연구보고서에 따르면 3기 신도시 사업에는 공동주택 총 18만6000가구가 공급되며, 2026년부터 2031년까지 이 주택 건설에 레미콘이 총 2730만㎥ 필요한 것으로 분석됐다.
보고서는 권역별 반경 20㎞ 이내 레미콘 제조업체들이 지금과 같이 일반 현장에 레미콘을 우선 공급하고, 남은 물량을 3기 신도시에 공급한다고 가정했을 때 왕숙지구에서 약 95만㎥의 레미콘 부족분이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왕숙 지역 레미콘 업체의 최대 출하량은 연 833만㎥ 수준으로 나타났으며, 3기 신도시 사업을 포함한 이 지역의 연간 레미콘 수요량은 △2026년 707만㎥ △2027년 790만㎥ △2028년 902만㎥ △2029년 858만㎥ △2030년 508만㎥ △2031년 580만㎥으로 전망됐다.
이에 따라 3기 신도시 왕숙지구 사업에는 2028년 70만㎥, 2029년 25만㎥의 레미콘 부족분이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사업기간 내 총 95만㎥이 부족한 것으로 이는 전용면적 59㎡ 기준 약 6500가구에 해당하는 물량이다.
보고서는 이에따라 현장 BP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특히, 2022년과 2024년 두 차례에 걸쳐 레미콘 운송노조 파업으로 레미콘 수급난이 발생한 것과 최근 레미콘 품질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는 것을 언급하며 현장 BP설치로 공사에 차질없이 레미콘을 공급받고 품질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이를 통해 탄소 배출량도 75%가량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판단했다.
신도시 사업기간 내 레미콘 95㎥ 부족
“시간당 210㎥ 현장 생산설비 2기 필요” 제안
LH토지주택연구원은 현장 배처플랜트의 구체적인 운영 방안도 제시했다.
왕숙지구 현장에 시간당 210㎥를 생산하는 BP를 두 대 설치해 하루 8시간씩 가동하는 것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주장했다. 현장배처플랜트 1대 설치 비용은 약 81억원으로 책정했으며 생산단가 및 운반비 등 모든 요소를 고려할 때 1대당 20만㎥를 생산하면 투자비용을 회수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민간 물량을 모두 소화해도 부족분이 발생하는 만큼 공사를 정상적으로 진행하기 위해 BP를 설치해야 한다는 의미”라며 “3기 신도시 때문에 레미콘 공장을 증설하는 것보다 BP를 현장 설치하는 것이 품질확보 및 친환경 측면에서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만 추후 3기 신도시 사업 계획 및 규모가 변동되면 해당 연구결과도 바뀔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국토교통부는 지난해 10월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발표하면서 3기 신도시 건설현장에 BP 설치를 추진하기로 한 바 있다.
현장 배처플랜트 도입 확대는 레미콘업계에 큰 타격이지만 시멘트업계에는 새로운 기회로 작용할 수 있다.
시멘트는 레미콘의 재료가 되기 때문에 시멘트사들과 레미콘사들은 시멘트 가격을 두고 갈등을 겪어 왔다.
배처플랜트 사업자라는 신규 이해관계자가 등장한다면 시멘트사들의 고객사는 다양해질 수 있다는 지적이다.
실제 업계전문가들은 새로운 매출처 확보와 더불어 이에 따른 시멘트사들의 협상력 강화도 기대해볼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서울내 공장 없는 삼표, 이해관계 달라져
법인 세워 현장배처플랜트 사업 펼칠 수도
이런 상황에서 서울권내 레미콘 공장이 모두 철수하는 삼표는 그룹계열사 중 상대적으로 중요도가 높은 시멘트사의 시각에서 배처플랜트를 바라보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표그룹의 체질개선 시도도 배처플랜트에 대한 시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소음, 교통 체증 등을 이유로 2022년 삼표그룹의 서울 성동구 성수 레미콘 공장이 철거된 데 이어 이달 말에는 송파구 풍납동 공장의 가동이 멈추지만 공장이 기피시설로 인식되는 만큼 수도권에서 대체 부지를 찾기 힘든 상황이다.
삼표그룹은 레미콘 사업 축소가 불가피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기존 건자재 기업에서 부동산 개발업체로의 정체성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레미콘, 시멘트 등 건자재 매출은 전방산업인 건설업의 영향이 절대적이라는 한계를 극복한다는 측면에서도 정체성 변화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부동산 개발업계 입장에서도 배처플랜트 확대 조짐은 나쁘지 않다는 분석이다.
개발업체가 배처플랜트 설치에 직접적으로 관여하지는 않지만 레미콘 납기 지연에 대한 우려가 줄어드는 만큼 공사기간 단축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실제 서울도심내 레미콘공장을 모두 철수시키게 된 삼표그룹은 부동산 개발 과정에서 사돈기업인 현대그룹계열 건설사들과의 협업이 확대한다는 계획으로 건설사에 유리한 방향인 배처플랜트 확대에 보다 유연한 입장을 취하는 것으로 풀이된다.
한 레미콘업계 관계자는 “함께 ‘레미콘 빅3’로 불리는 유진기업과 아주산업은 현장 배처플랜트 설치에 대한 걱정이 크지만 삼표산업은 이해관계가 다를 수 있다”며 “삼표그룹의 여유로운 태도에 업계에서는 향후 삼표가 신규 기업 설립을 통해 배처플랜트 사업에 나설 수 있다는 추측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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