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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와 자연과의 완벽한 조화, 중국 명산 망산·고의령 탐방기

작성일 : 2025.12.03 04:35

효(孝)를 다시금 생각하게 되는 5월이다. 유교는 중국 춘추시대 말기, 공자(孔子, 기원전 551~479)가 당시 전승되던 문화와 사상을 체계화하며 정립한 사상으로, 중국을 발원지로 하여 주변 나라로 널리 퍼져나갔다. 한국에는 삼국시대에 본격적으로 유입되어 오랜 세월 동안 사회 윤리의 근간이 되었다. 나는 이번에 유교의 발상지인 중국, 그중에서도 첸저우(침주,郴州)지역을 찾았다. 투어 여행팀에는 76세 아버지와 46세 아들(IT전문가)도 동행하여, 함께 숙박하고 식사를 나누며 깊은 시간을 보냈다. 바쁜 일상에서도 말없이 시간을 내어 아버지를 모시고 여행에 나선 아들의 뒷모습에서, 나는 문득 젊은 날의 내 모습을 떠올렸다. 생전에 한 번도 여행을 함께하지 못했던 부친의 기억이 겹치며, ‘효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마음속 깊이 울려 퍼졌다. 한국의 어버이날, 그리고 유교의 뿌리가 살아 숨 쉬는 중국. 두 문화가 만나는 이 여정 속에서, 우리는 점점 퇴색해 가는 효의 가치와, 험해져 가는 사회 분위기 속에서 잊고 지냈던 ‘효의 본질’을 다시금 되새기게 된다.

각설하고, 이번 여행은 2025년 5월 4일부터 8일까지의 연휴를 활용해 잠시 다녀온 것이다. 이 시기는 중국 역시 황금연휴 기간에 해당하지만, 우리가 도착한 시점은 그들의 연휴 마지막 날에 가까워 현지의 혼잡을 피하고 비교적 여유롭게 여행을 즐길 수 있었다.

효의 땅에서 다시 찾은 쉼과 사색
– 중국 첸저우·망산 4박 5일 투어 여행기
여행은 4박 5일 일정이었고, 광둥성 광저우(廣州) 국제공항에 도착하면서 시작되었다. 무비자로 여행이 편해졌다. 일행은 교포 4세 가이드와 함께 곧바로 고속 열차 역으로 이동하며 첸저우에 도착하면서 본격적인 일정이 펼쳐졌다. 광저우는 베이징, 상하이에 이어 중국 3대 도시 중 하나로, 진나라 시황제 때부터 주요 도시로 성장했으며, 아편 전쟁 당시에는 영국군이 점령했던 역사를 지니고 있다. 홍콩과 가까운 지리적 이점 덕분에 대외 무역항의 역할도 오랜 기간 수행해 왔다. 공항을 비롯한 도시의 건물과 시설은 그야말로 중국의 광대한 땅덩이에 걸맞게 모든 것이 크고 웅장했다. 첫인상부터 절로 “와!”하는 탄성이 나온다.

1일 차: 유후가 옛 거리의 밤
 첫날은 광저우 백운 철도역에서 침주서역으로 이동했고, 저녁 무렵에는 학선교(鶴善橋) 주변 강가를 따라 형성된 천저우 시내에서 가장 오래된 옛 거리 유후가(裕后街)를 산책했다. 조용하고 고풍스러운 풍경 속에 형성된 상가 지역의 모습과 그들의 생활상들을 느낄 수 있었다.

2일 차: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 고의령 등반
 폭우로 인해 예정되었던 소동 강 유람이 취소되었고, 전날 선박 전복 사고까지 겹쳐 일정이 급히 변경되었다. 우중에, 고의령(高椅岭)으로 향해 우의를 입고 등반에 나섰다. 산은 붉은 퇴적암이 융기한 희귀한 단하지형의 나무 없는 바위산으로 이루어졌고, 평평하고, 깎아지른 절벽이 기묘했다. 3봉우리가 있는데 우리 일행은 1봉과 2봉만 산행하였다, 경사도가 높은 곳은 계단인데, 황산 계단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 그리고 계곡사이는 호수가 만들어져 정말 색다른 경관을 연출했고 이채로웠다. 빗속 등반으로 바지와 신발이 흠뻑 젖었고, 신발 커버는 무용지물이었고, 발은 불어 터졌다. 저녁은 손수 소스를 만들어 먹는 훠궈(소고기 샤부샤부)로 마무리했는데, 중국인들이 상추를 익혀 먹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 그리고 일행들과 함께한 삼겹살과 소주, 침주의 전통 마사지가 피로를 녹여주었다. 마사지 샵은 6,000개 룸 규모만으로도 압도적이었고, 전원 여성 마사지사, 그 모습은 쉽게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이색적이었다.

3일 차: 안개 속의 망산, 산림온천의 여운
 오전은 오픈한 침향환 전문점을 들렀고, 본 여행의 하이라이트인 망산(莽山)으로 향했다. 역시 비가 왔지만, 전날보다는 덜했고, 산으로 갈수록 안개가 짙어졌다. 주요 봉우리는 흐릿하게 드러났다, 사라지기를 반복했고, 특히, ‘오지(五指)봉’은 끝내 모습을 보여주지 않았다. 망사 뱀도 볼 수 없었지만, 안개 낀 산세는 또 다른 운치를 선사했다. 망산의 잔도는 모두 현장 타설 콘크리트로 만든 견고한 구조였으며, 평탄하게 조성되어 걷기 편리했다. 저녁 숙소는 산속에 자리한 산림 온천이었고, 비 오는 날 온천수에 몸을 담그며 진한 여운과 위로를 함께했다.

4일 차: 자연의 깊이를 걷다
 전날 취소되었던 소동 강, 두솔동굴, 용경협곡, 비천산(飛天山) 등을 둘러보는 일정이 이어졌다. 소동 강은 댐으로 인해 상류와 하류가 뚜렷하게 나뉘며, 민물고기가 많이 잡히는 지역답게 튀김, 양념 생선요리가 인기였다. 동굴은 총길이 5km, 석회암동굴로 삼척의 환선굴과 비슷했고 서유기 촬영지, 비천산은 고의령과 유사한 지형인데, 일부 풀과 나무가 자라 좀 더 부드러운 인상을 주었다. 유람선을 타고 취강을 따라 한 나라 때부터 상업 거리인 와요평(瓦窯坪) 옛 고촌을 지나며, 첸저우의 수백 년 정통 역사 거리의 운치를 느꼈다. 이후 광저우남역으로 이동하여 공항 근처에서 1박 한 뒤 다음 날 인천행 비행기로 귀국했다. 짧지만 알찬 여정이었다.

여행의 끝에서 
 이번 여행은 단순한 관광이 아니었다. 여행팀에서 만난 부자의 모습, 빗속 산행에서 피어오른 동행의 정, 그리고 고요한 온천에서의 사색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졌다. 그간 장가계와 황산, 옥룡설산도 다녀보았지만, 이제 막 개발되기 시작한 망산은 인파가 적어, 여유롭게 풍경을 감상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중국의 험준한 산악 지형에 설치된 케이블카 기술과 현장 타설 방식으로 시공된 잔도(棧道) 콘크리트 기술은 절로 감탄을 자아냈다. 높은 산을 감싸는 안개 속에서, 나는 문득 잊고 지냈던 “효(孝)”의 본질을 다시 떠올렸다. 끝으로, 처와 함께 걸은 이 길은 단순한 여정이 아니라, 세대를 잇는 마음의 기록이자 깊은 위로였다.(이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