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독점 구조 흔들리고, 친환경·원가 경쟁이 판을 바꾼다
작성일 : 2026.05.06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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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환경·원가·기술, 아스콘 산업 재편 3대 변수
“이제는 물량이 아니라 기술”
새벽 5시, 수도권 외곽의 한 아스콘 공장.
대형 드럼이 돌아가고, 골재와 아스팔트가 섞이며 검은 혼합물이 쏟아져 나온다.
현장 책임자는 짧게 말한다.
“예전에는 많이 찍어내면 됐습니다. 지금은 그게 아닙니다”
이 한 문장은 지금 한국 아스콘 산업의 변화를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줄지 않는 시장 그러나 ‘돈 벌기 어려운 구조’
안정적인 지역독점 산업 형태, 수익은 불안정
국내 아스콘 시장은 연간 약 5조~7조 원 규모에 달한다. 도로가 존재하는 한 사라질 수 없는 산업이다.
하지만 기업들의 체감은 다르다.
수도권 중견 아스콘 업체 임원 A씨는 말한다.
“일감은 꾸준한데 남는 게 없습니다. 유가 오르면 바로 적자 구조로 갑니다.”
실제 아스콘 원가의 절반 이상은 아스팔트(석유 부산물)다.
즉, 국제 유가가 곧 수익성을 결정한다.
아스콘 산업의 가장 큰 특징은 ‘지역성’이다.
제품 특성상 생산 후 빠르게 식기 때문에 운송 가능 거리는 약 30~50km에 불과하다.
한국 아스콘산업은 전국 시장이 아니라는 의미다.
반제품 특성상 50km 경제권의 벽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공 발주 중심의 관수의존도가 막강한 아스콘 자재특성상 중소기업고유업종으로 보호받던 혜택이 한참전에 끝났음에도 그 명맥과 흔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중소기업간 경쟁품목으로 지정돼 지역조합 중심의 수주구조를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는 아스콘산업은 이같은 지역 기반의 분절시장적 특성 때문에 아스콘산업은 강력한 지역 거점 구조의 토호적 지역산업으로 불린다.
국내 아스콘산업은 결국 전국 시장이 아닌, 지역별 독점 경쟁 구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여기에 생산공장의 입지가 시장 점유율로 연결되는 구조상 아스콘산업은 전국 1등보다 지역 1등이 더 강한 독특한 산업의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
지방 업체 대표 B씨는 이렇게 설명한다.
“서울 업체가 부산 와서 경쟁 못 합니다. 공장이 곧 시장입니다.”
이로 인해 국내 시장은 수도권 영남 호남 충청 등으로 나뉜다.
결국 아스콘산업은 전국 경쟁이 아닌 지역 독점 경쟁 체제라는 특수성을 벗어나기 어렵다는 한계를 안고 도전해야 하는 시장인 셈이다.
도로는 줄지 않고 유지보수는 계속돼
정체된 듯 보이지만 실제로는 ‘순환 시장’
이렇게 한국 아스콘 산업은 전형적인 내수·저성장 산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지만 이제는 구조 재편과 기술 전환이 동시에 진행되는 ‘전환기 시장’에 진입했다.
도로 건설 감소에도 불구하고 유지보수 수요, 친환경 규제, 환경설비 시장 확대가 맞물리며 산업의 방향이 빠르게 바뀌고 있는 것이다.
국내 아스콘 시장은 외형상 정체 상태지만, 실제로는 지속적인 교체·보수 중심의 순환 시장 구조를 가진다.
한국아스콘공업협동조합연합회(회장 서상연)가 추산하는 국내 아스콘 생산 규모는 연간 약 2,000만~2,600만 톤 수준에 달한다.
아스콘시장 규모를 금액으로 환산하면 약 5조~7조 원대 시장으로 추정할 수 있다.
특히 아스콘은 다른 산업과 비교하면 신규수요 이상의 순환수요 비중이 큰 특성을 지니고 있다.
즉 아스콘업계에 수익이 되는 신규도로 신설의 경우 도로 수명이 약 10~15년 정도이기 때문에 이후의 도로유지보수 수요는 끊임없는 아스콘산업의 먹거리로 그 비중이 절대적일 수밖에 없다.
이 독특한 수요구조 덕분에 아스콘산업은 ‘신규 수요는 줄어도 시장 자체는 사라지지 않는 산업’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스마트 플랜트 시대 개막”
환경 규제가 산업구조 전환 가속화
“기술 없는 업체는 시장에서 버티기 어려울 겁니다” 이제는 아스콘 공장도 변하고 있다.
경험 기반의 수작업 관리와 생산체제에서 자동 배합과 실시간 품질 제어로 자동화 시스템이 빠르게 확산하고 있는 중이다. 여기에 에너지 효율 최적화까지 스마트한 설비와 운용이 대세다.
플랜트 엔지니어 E씨는 말한다.
“이제 공장도 데이터로 운영합니다. 사람 감으로 하는 시대는 끝났습니다. 이미 게임의 큰 틀이 바뀌고 있는 거죠. 기술 없는 업체는 시장에서 살아남기 어려운 세상이 될 겁니다”
아스콘제조업계의 최근 가장 큰 변수는 단연 ‘환경’이다.
저탄소 아스콘에서부터 재활용 아스콘(RAP), 거기에 상온 중온 아스콘(WMA)까지 친환경 아스콘 기술에 대한 시장의 흐름과 변화는 더 이상 거스를 수 없는 상수가 됐다.
특히 정부의 각종 규제와 인센티브 정책으로 환경에 대한 발주처 요구가 빠르게 강화되는 분위기다.
도로건설 관련 공공기관 관계자 A씨는 “지금은 가격만 보는 시대가 아닙니다. 환경 기준을 못 맞추면 입찰 자체가 어렵습니다”고 지적했다.
SG 관계자는 인터뷰에서 이렇게 강조했다.
“단순 생산만으로는 더 이상 수익이 안 납니다. 시공까지 해야 구조가 나옵니다”
이들은 친환경 아스콘 도로 시공 해외 프로젝트까지 확장하고 있다.
아스콘플랜트 제조업계 관계자 C씨는 이렇게 말한다.
“요즘 아스콘플랜트 문의의 절반이 ‘환경 설비 교체’입니다. 예전과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특히 유해 배출가스 저감 에너지 절감 자동화 설비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국내 아스콘플랜트업계는 “30년전 정부의 재활용 촉진정책에 따라 국내 재생아스콘 플랜트 수요가 급증했던 것처럼 향후 친환경 흐름에 따라 아스콘산업이 바뀔수록 더 유리해지는 구조”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이 적지 않다.
그러나 아스콘을 생산하는 아스콘 제조업계는 이 같은 산업의 전환점에서 가장 큰 위기에 놓여 있다.
지방 업체 대표 D씨는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환경 설비 투자하려면 수십억입니다. 중소업체는 감당이 안 됩니다”
아스콘 산업의 본질 “버티는 게임”
지금은 성장기가 아니라 ‘선별기’
국내 시장은 이미 포화 상태다.
20년전 300여개 공장 규모였던 국내 아스콘 공급시장은 어느덧 530개 공장이 훌쩍 넘어서고 있다.
중견기업 전략 담당 임원 F씨는 이렇게 말한다.
“국내만 보면 성장 없습니다. 동남아나 중동이 유일한 기회입니다”
실제 일부 기업들은 동남아 도로 사업 우크라이나 재건 중동 인프라 프로젝트 진출을 추진 중이다.
사실 아스콘 산업은 화려하지 않다.
미래형 첨단 기술 집약형 산업이 아닌 기간산업 특유의 거칠고 투박한 제조업이다.
하지만 산업적 특성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외의 매력이 존재하다.
국내의 아스콘업체는 무려 530여개가 넘는 과포화상태에 도달했지만 지금도 신규 공장 수요가 지속되는 속내에는 매우 냉정한 경제논리가 도사리고 있다.
업계 한 관계자는 이렇게 정리한다. “이윤으로 따지면 그리 좋은 사업은 아닙니다. 대신 오래 버티는 사업입니다”
토지매입부터 인허가과정 및 고가의 최신 아스콘생산설비를 들여놓기 위해 예전보다 더 막대한 비용이 소모되자, 최근에는 은퇴자 여러 명이 동업 개념으로 사업투자에 나서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 아스콘연합회 관계자의 설명이다. 큰 수익이 없더라도 안정적인 관수 의존도가 높은 아스콘산업의 특성이 꾸준한 수익을 도모하는 투자자들을 끌어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누가 살아남을까
전문가들은 생존 조건을 명확히 제시한다. 살아남는 기업의 조건은 친환경 기술 보유 자동화 설비 투자 원가 통제 능력 시공·생산 통합해외 진출 역량에 달려있다고 지적했다.
반면 사라지는 기업은 노후 설비 단순 생산 구조 환경 대응 역량이 안되는 곳이다.
한국 아스콘 산업은 지금성장보다 더 중요한 국면에 들어섰다. 바로 “누가 남을 것인가”를 결정하는 시기 이다.
다시 처음에 찾았던 그 수도권 외곽의 아스콘공장으로 돌아가 보자. 아스콘이 트럭에 실려 도로로 향한다.
몇 시간 후면 식어 굳고, 몇 년 후면 다시 뜯어질 것이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기업들의 운명은 갈린다.
“도로는 반복 되지만, 그 위에 서 있는 기업의 명단은 반복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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