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2.01 12:23
서언
전 강좌에서는 현대적 시멘트의 탄생과정에 대하여 기술 하였다. 이번 강좌에서는 전 강좌의 연속으로 우리가 일반적으로 가장 많이 사용하고 있는 포틀랜드 시멘트와 관련하여 그의 유래, 정체, 진정한 발명자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대하여 고찰해 본다.
포틀랜드의 유래
현재 콘크리트 공사에서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포틀랜드 시멘트는 영국의 아습딘(Joseph Aspdin)이 발명자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면 이 시멘트의 이름에 있는 「포틀랜드」라고 하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 것일까? 예를 들어 알루미나 시멘트라고 하면 성분에 알루미나를 다량 함유한 시멘트이고, 초조강 시멘트는 아주 빨리 강도를 발휘하는 특성을 갖는 시멘트 등 이것들의 경우는 명칭으로부터 어떤 시멘트인가 대략 짐작이 간다. 이에 비해 「포틀랜드」라고 하는 이름에서는 성분이며, 특성 등 아무것도 전달되지 않는다.
그런데, 「포틀랜드」라고 최초로 이름 붙인 사람은 아습딘으로, 그 무렵 영국에서 건축용 석재로 귀중하게 쓰였던 것은 포틀랜드스톤 이었다. 영국 남부 포틀랜드섬(그림 1 참조)에서 산출되는 것으로 석회암질의 석재였다. 세인트폴성당(그림 1 참조)을 시작으로 우수한 건축물에 사용되고 있는 석재에 아습딘은 동경을 품고 있었던 것일까? 자신이 개발한 시멘트에도 이 석재와 같이 중요하게 사용되어 졌으면 좋겠다는 소원을 담았을지? 어찌 되었든 포틀랜드스톤을 닮아 있으므로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이름을 붙이게 된 것이다. 다행히 그 시멘트를 이용한 콘크리트는 단단하기도 좋고, 성질도 좋아 포틀랜드스톤에 가까운 것이었다. 거기에 색깔까지도 담황색으로 잘 닮아 있었다. 이것은 「인공의 포틀랜드스톤」이라고 아습딘은 자만했을 것임에 틀림 없다. 따라서 그런 자부가 「포틀랜드」라는 이름에 들어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 된다.
그런데 현대의 시멘트를 이용한 콘크리트는 회색이다. 그렇지만 아습딘의 시멘트는 담황색이었다. 왜 그럴까? 그것은 소성 온도가 1200℃ 정도로 낮았으므로 덜 익은 것과 같은 시멘트이었기 때문이라고 알려져 있다. 덜 익은 것은 결국 강도 발현에 기여하는 시멘트 광물이 거의 생성되지 않아 충분한 강도가 얻어지지 않았었다. 따라서 현재에는 아습딘보다 200℃ 이상 높은 온도로 소성하고 있으므로 성분이 변질되어 황색이었던 색깔이 회색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포틀랜드 시멘트의 정체
이와 같은 아습딘의 시멘트는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시멘트와는 매우 다른 것이었다. 그 정도의 시멘트라면 프랑스 비카트(Louis Joseph Vicat) 등에 의해 만들어졌던 것과 별 차이가 없었다.
죤슨(Isae Charles Johnson)은 아습딘과는 다른 시멘트회사의 기사였다. 그 회사에서는 천연 시멘트를 제조하였는데, 아습딘의 시멘트가 성행하여 이용되는 것에 놀라 포틀랜드 시멘트를 만들고 싶다고 아습딘에게 협상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아습딘은 응해주지 않았다. 할 수 없이 그는 독자로 시멘트를 개발하게 되었다.
그는 먼저 아습딘의 제조방법의 키를 찾으려고 했다. 그러나 아습딘의 공장 주위에는 높은 벽으로 쌓여져 있어 공장 내의 모습을 전혀 알 수 없었다. 겨우 공장에 근무하는 사람을 만나 들어보면 아습딘 이외에는 아무도 상세한 제조방법을 모른다고 하였다. 그저 소성 가마에 재료를 넣고 나면 아습딘이 와서 그 안에 몇 개의 분말을 뿌린다는 것만을 알 뿐이었다. 아무래도 그 분말에 어떤 의미가 있을 것 같았다.
죤슨은 아습딘의 시멘트를 분석해 보았다. 그 결과 소량의 인산칼슘이 포함되어있는 것을 알고 죤슨은 놀랐다. 그는 서둘러 그 성분의 근본이 되는 소뼈를 갈아 넣어 아습딘 시멘트의 재현을 시도하였다. 그러나 그렇게 하여 얻어진 시멘트는 실용에 이용할 만한 것이 아니었다. 죤슨이 분석한 시멘트는 제법의 비밀이 알려지지 않게 하려는 아습딘의 감추기용 행위이었기 때문이다. 신비의 분말을 뿌리는 아습딘의 모습을 떠올리며 죤슨은 아습딘의 비밀의 벽이 너무 높은 것을 깨닫고 독자적인 시멘트를 개발하려고 결심했다.
진정한 발명자는?
죤슨은 양질의 시멘트를 제조하는 결정타가 석회석과 점토의 배합비율, 거기에 소성온도라고 생각했다. 따라서 죤슨은 그것들을 변수로 하여 여러 각도의 실험을 진행하여 결국 우수한 품질의 시멘트를 얻게 되었다. 품질면으로 아습딘을 넘어섰다고 자부하는 죤슨은 포틀랜드 시멘트의 진정한 발명자는 자기 자신이라고 주장하며, 영국 시멘트 협회에 이를 신청했다. 그러나 이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대신 포틀랜드 시멘트의 개량자로는 인정을 받게 되었다. 죤슨은 「아습딘의 시멘트는 분필과 치즈가 닮지 않은 것처럼 본인의 시멘트와는 닮지 않았다」고 분통을 터뜨렸지만,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이윽고 죤슨은 세상을 떠났다.
아습딘의 특허 취득 후 100년이 지난 시점에서 영국 시멘트 협회는 미국의 협회와도 협의하여 아습딘 이야말로 진정한 현대시멘트의 발명자라는 것을 인정해 아습딘 탄생지인 리즈시(그림 1 참조)에 그것을 명기한 기념비를 세웠다. 포틀랜드 시멘트의 발명자에 관한 논쟁에 종지부를 찍게 된 것이었다.
현대적 시멘트의 제조방법을 확립한 죤슨의 경우, 최대의 실패는 그가 개발한 시멘트를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칭하여 세상에 내보냈다는 것이다. 아습딘의 특허기한이 이미 끝났으므로 다른 명칭을 사용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죤슨의 당초 목적이 아습딘과 같은 시멘트를 만들어 내는 것이었기 때문에 상품명을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하는 것은 당연하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품질만큼은 아습딘을 상회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독자적인 명칭을 썼어도 되지 않았는지? 역사에서 가정은 허용되지 않지만, 만약 죤슨이 그의 시멘트에 독자적인 명칭을 붙였더라면 「포틀랜드」의 대신으로 우리들은 그것을 사용하고 있었을 것임에 틀림이 없다. 그렇게 되면 죤슨은 현대시멘트의 발명자로 칭송을 받았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어디까지나 가정에 불과하다는 것이 아습딘에게는 행운이었다. 더욱이 행운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실은 아습딘에 앞서 수십년 전 에디스톤 등대(그림 1 참조)를 재건한 스민튼이 자신이 개발한 시멘트에 있어서 「의심도 없이 이것은 포틀랜드스톤에 필적하는 강도와 내구성을 갖는다」라고 설명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기의 시멘트를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부르지 않았었다. 후년에 아습딘은 이 스민튼의 말에서 힌트를 얻어 자신의 시멘트에 「포틀랜드 시멘트」라고 이름을 붙였다는 설도 있다.
아습딘은 정말로 운이 좋은 사람이었다. 생각해보면 「포틀랜드」의 명칭을 이용한 것이야말로 아습딘의 가장 큰 공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아습딘 때문에 포틀랜드 시멘트의 이름이 역사에 등장하게 되었고, 또한 포틀랜드라는 이름 때문에 아습딘은 역사에 길이 이름을 남기게 된 것이다.
![]()
금주의 핫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