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성일 : 2023.03.03 10:05 수정일 : 2023.03.03 10:25
서언
이전 강좌에서는 현대적 시멘트의 탄생과 포틀랜드 시멘트의 의미에 대하여 소개 하였다. 이번 강좌에서는 전 강좌의 연속으로 콘크리트 강도를 제일 크게 좌우하는 요인을 탐색하는 과정의 역사적인 사항들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현대적 콘크리트의 탄생
1756년 영국의 스민튼이 에디스톤 등대 재건시 점토를 포함한 불순 석회석이 순수 석회석보다 수경성이 있고, 강도, 내구성이 양호하다는 것을 발견한 이후, 발전을 거듭하여 1818년 프랑스 비카트의 석회석과 점토의 미분쇄 혼합소성기술의 발명을 토대로 1824년 아습딘의 「인조석 제조법의 개량」으로 특허를 얻어 실용화한 다음 20년 후 죤슨의 석회석과 점토의 최적 비율 및 최적 소성온도의 결정으로 현대 시멘트의 근간을 이루며 발전하게 되었다. 그 이후로도 1880년 독일의 미캐리스(W. Michaelies)의 실리카 시멘트 개발, 1882~1885년 독일의 고로시멘트 개발, 영국 란솜(F. Ransome)의 소성로 개발 등 꾸준한 발전을 이루었다.
그러나 그 시대의 시멘트는 알루미네이트상(C3A)의 빠른 수화반응으로 시간을 가지고 작업하는 공업적 생산이라든지 장시간 운반은 불가능하였다. 이문제를 해결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1890년경 프랑스의 지론(P. I. Giron)이며, 그는 석고를 시멘트에 혼합시켜 줌으로써 에트린가이트 생성으로 급결성을 해결 해주는 지연재를 발명한 것이었다. 이렇게 됨으로서 1903년 독일의 마겐스(Magens)에 의해 근대 레미콘 설비 형태인 배쳐플랜트를 고안한 것에서부터 출발하여 1913년 이후부터 미국과 독일 등이 중심이 되어 덤프트럭 및 드럼 회전 트럭으로 콘크리트 운반, 파이프 수송(펌프의 효시), 레미콘의 표준규격 제정 등으로 발전을 거듭하여 현대개념의 시멘트·콘크리트 및 레미콘이 완성되게 되었다.
콘크리트의 강도를 좌우하는 것
그런데, 이와 같은 콘크리트는 주변의 값싸고 풍부한 재료를 이용하여 간단한 혼합 등의 조작으로 자유로운 형태 구현이 가능한데, 물 및 화재에 강하고 강도 및 내구성도 우수하다는 특성이 있다. 특히 중요한 장점은 요구하는 강도를 마음대로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면 어느 요인이 콘크리트의 강도를 제일 크게 좌우하는지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콘크리트를 구조체로 이용하기 시작하던 초기에는 콘크리트 배합으로 1:2:4(시멘트:모래:자갈), 1:3:6 등 재료의 배합비로 강도 등 품질의 등급을 나타내었다. 즉, 1:3:6보다 1:2:4가 단위 체적(1m3) 당의 재료 양으로 생각하면 시멘트는 많이 들어가고, 모래·자갈은 적게 들어가니 결국 강도가 크고 내구성 등 품질이 양호하다는 것이다. 즉, 물의 사용량은 고려의 대상이 아니고 단위 시멘트 사용량이 강도를 좌우하는 것으로 알려져 왔다. 그러나, 1918년 미국의 아브람스(Duff A. Abrams)가 물·시멘트비 설을 발표하면서부터는 생각의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다. 즉. 아브람스는 「적절한 질기로 콘크리트가 충분히 다짐 되어져 있다면 그 강도는 물·시멘트비에 반비례 한다」라고 하는 것으로, 그 관계는 식 (1) 및 그림 1과 같이 하나의 지수곡선식으로 표현되고 있다.
= A/Bx (1)
여기서, : 콘크리트의 압축강도
A,B : 시멘트의 품질에 따르는 상수
x : 물·시멘트비(W/C)
5만 개의 공시체
이와같은 결과에 이르기까지 그것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다. 1880년에 태어난 아브람스는 1905년에 일리노이 대학을 졸업한 후 연구 조수가 되었다. 더프(Duff)라고 하는 기묘한 이름은 별명이 아니라 본명으로 양친이 부쳐준 이름이다. 그의 일은 동료들을 위해 공시체를 만드는 것이었고, 틈만 나면 실험실 한쪽에서 조용히 자신이 관심을 갖는 철근부착시험을 하고 있었다. 그의 오랜 부착시험 결과가 발표되자 그도 비로서 학계로부터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그 후 아브람스는 시카고에 있는 루이스 공업학교에 정교수가 되었으나 그는 여전히 조용히 콘크리트 공시체를 만들어 부수었는데, 그 파괴된 공시체는 미시간 호반을 메워 갔다. 동료들은 아브람스가 더 나은 연구주제를 찾기 위해 일리노이 대학으로 돌아오지 않을까? 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아브람스가 은사인 일리노이 대학 탈보트 교수도 안색을 잃어버릴만한 법칙 즉, 「배합이나 골재의 입도가 아니라 물과 시멘트의 비율이 워커블한 콘크리트의 강도를 결정한다.」라고 하는 법칙을 발표한 것이다. 오래된 이론이나 사실들이 이 새로운 법칙을 기본으로 재해석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까지 해석할 수 없었던 많은 것들도 명료하게 설명될 수 있었다. 이 법칙으로 말미암아 콘크리트를 만드는 것이 처음으로 하나의 과학이 된 것이다. 여기에 이를 때까지 호반을 메워온 콘크리트 공시체는 5만 개에 달했다.
그 후 1932년 노르웨이의 리스(I. Lyse)가 식 (2)와 같이 아브람스의 이론을 수정해 「콘크리트의 강도는 시멘트·물 비에 비례한다.」라고 하는 직선식을 발표하게 되었다.
= A +B(C/W) ............................................. (2)
여기서, A,B : 실험으로부터 결정되는 상수
C/W : 시멘트·물비
리스의 직선식을 도시화하면 그림 2와 같다. 「콘크리트에 여분의 물을 사용할수록 강도는 직선적으로 감소한다.」는 것이 한눈에 알 수 있게 되었다.
그 이외에도 1921년 탈보트(A. N. Talbot)의 (3)식과 같은 공극설도 있다.
= A +B(C/) ..................................................... (3)
여기서, A,B : 상수
C : 시멘트의 절대부피
υ : 단위수량의 부피와 콘크리트 1㎥ 중 공기부피의 합
아브람스나 리스의 성과는 현재에도 콘크리트의 합리적인 배합 결정에 활용되어 크게 공헌하고 있다.
![]()
금주의 핫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