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리고 미래를 향한 아버지와 아들의 동행
작성일 : 2026.01.05 09:40
이번 호에서는 필자와 긴 인연을 맺어온 콘크리트 2차 제품 업체의 李 대표와 그의 아들과 함께한 방문기입니다. 일본 군마현(群馬県)과 도쿄를 방문하며, 부친(李 대표)의 37년 전 콘크리트 2차 제품 대일기술연수생(対日技術研修生) 시절 처음 일본을 밟았던 기억을 되살리고, 미래 경영자로 성장하는 아들과 세대 간 깊은 대화를 나눈 특별한 경험을 전하고자 합니다.
1. 다시 일본으로, 그리고 다시 군마로
2025년 11월 20일 새벽, 청주공항을 떠나는 순간, 37년 전, 일본에서의 기억이 되살아 났다. 당시 콘크리트 2차 제품 대일기술연수생이었던 저는 새벽부터 밤까지 콘크리트 제품 제조 기술과 품질관리를 배우고 익혔던 현장과 시간 들, 젊고 뜨거웠던 시절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고, 우리 회사를 키우는 밑거름이 되어 주었다. 그래서 이번 방문은 더욱 특별했다. 이제 경영권을 이어받아 회사의 미래를 책임져야 하는 아들이 동행했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여정은 흔히 말하는 MZ세대와 기성세대 사이의 벽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한 소중한 기회였다.
2. 군마현으로 향하는 길에서
도쿄에서 군마로 향하는 차창 밖으로는 늦가을에서 초겨울로 넘어가는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수확을 마친 들판은 황토 빛을 드러내고 있었고, 멀리 보이는 산봉우리는 깊은 겨울을 예고하고 있었다. 기온은 차가웠지만 햇살은 따스했고, 그 절묘한 조화가 군마의 계절을 말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동 중에 잠시 들른, ‘일본에서 가장 무서운 역’으로 불리는 도아이(土合)역의 지상과 지하 공간은 그 명성만큼이나 인상적이었다. 그곳을 둘러보던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여기는 제 인생보다 더 오래된 기억이 담긴 곳이겠네요.” 나는 잠시 멈칫한 뒤 답했다. “그렇지. 나에게 이곳은 단순한 연수지가 아니라 모든 것의 시작점 같은 곳이었단다.”
3. 일본 콘크리트 2차 제품 회사를 다시 마주하다
37년 전 기술 연수를 받았던 ㈜적성상회를 다시 찾았을 때, 옛 기억과 현재가 포개지는 듯한 묘한 감정이 밀려왔다. 설비는 예전보다 현대화되어 있었고 건물도 확장되어 있었지만, 기본적인 생산 흐름과 조직 문화는 여전히 안정감 있게 이어지고 있었다. 현장을 둘러보던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규모가 한국에 비해 엄청 크지는 않은데 제품 종류가 굉장히 다양하네요.” “그래. 일본은 맞춤형, 세분화된 수요에 대응하는 데 강해. 한국의 대량 생산 방식과는 조금 다르지.” 그리고 놀랍게도, 37년 전 기술 연수 당시 공정과 품질관리를 지도해 주었던 공장장은 이미 수년 전 세상을 떠났고, 그때의 사장은 어느덧 고령의 회장이 되어 있었다. 희끗해진 머리카락 너머로 비친 여전히 따뜻한 눈빛을 마주하자, 시간의 흐름이 한순간에 이어지는 듯한 깊은 울림이 밀려왔다. 이제는 그의 아들이 대표로서 우리를 따뜻하게 맞이해 주었다.
4. 일본 전통 료칸에서의 밤 - 아버지와 아들이 처음 나눈 깊은 대화
그날 저녁 숙박한 쿠사츠(草津)의 전통 료칸은 다다미의 향과 미닫이문, 온천수의 김이 어우러져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었다. 식사를 마친 뒤 사케를 한 잔씩 나누며 자연스럽게 깊은 대화를 이어갔다. “아버지, 콘크리트 산업의 미래는 어디로 가고 있을까요?” 아들의 질문에 나는 천천히 생각을 정리해 답했다. “이제는 단순히 기술 경쟁으로 끝나는 시대가 아니야. 환경, 사회적 역할(ESG), 지속 가능성까지 포함해서 봐야 한다. 우리가 만드는 건 단순한 제품이 아니라 사회의 기반이니까.” 아들은 곧바로 CO₂ 저감 기술과 SBTi, 친환경 생산 방식, 그리고 AI를 결합한 자신의 아이디어를 덧붙였다. 세대는 다르지만 같은 목표를 향해 걷고 있다는 걸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5. 소바를 먹고, 강가 노천온천에서 마주한 늦가을
이번 여정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소 중 하나는 강가에 자리한 노천온천(川風呂)이었다. 강물은 천천히 흐르고, 석양은 붉게 물들어 물결 위에 반짝였으며, 온천의 따뜻한 수증기는 초겨울 공기 속으로 피어올랐다. 아들은 감탄하며 말했다. “정말 영화 속 장면 같아요.” 나는 발끝을 온천물에 담그며 조용히 말했다. “그때는 이런 여유를 느낄 시간도 없었지. 매일 기술을 익히느라 정신이 없었거든.” 그러자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 이런 여행… 앞으로도 계속 같이 하고 싶어요.” 그 한마디가 온천의 온기보다 더 깊게 마음을 데웠다.
6. 도쿄 도검박물관 - 장인의 기술과 현대의 시선
마지막 날 찾은 도쿄의 도검(刀劍)박물관에서, 나는 일본 전통 도검 제작 과정의 정교함에 다시 한번 감탄했다. 수십 단계를 거쳐, 수개월에서 때로는 수년에 걸려 완성되는 한 자루의 칼은 단순한 무기가 아니라, 장인의 혼과 정신이 깃든 예술 작품이었다. 아들은 금속을 단조하며 결정 구조가 강화되는 과정이, 뇌가 새로운 시냅스를 강화하며 학습하는 방식과 닮았다고 과학적 관점에서 흥미롭게 설명해주었다. 전통 기술과 현대 과학이 교차하는 순간을 발견한 것이 무척 흥미로웠다. 한편, 부친은 한국에서 검도를 오랫동안 수련해 왔으며, 기업을 경영하면서도 검도를 통해 집중력을 기르는 데 큰 도움을 받는다고 늘 이야기하곤 했다.
7. 여정을 마치며 - 과거·현재·미래가 한 자리에
2025년 11월 20일부터 22일까지의 3일은 단순한 출장도, 단순한 견학도 아니었다. 37년 전의 젊은 대일기술연수생이 품었던 꿈, 지금의 경영인이 바라보는 시선, 그리고 미래 경영자인 아들이 걸어갈 길이 한 번에 이어지는 시간이었다. 군마의 늦가을 풍경은 우리의 과거와 현재를 포근히 감싸주었고, 일본의 기업들은 기술이 향하는 방향을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무엇보다 아들과 나눈 대화는 우리 회사의 향후 10년, 20년을 구체적으로 그려볼 수 있게 해주었다. 이번 여행이 필자는 단순한 기록으로만 남지 않기를 바란다. 이 여정이 방문자 회사의 미래 전략이 되고, 아버지와 아들이 세대를 이어 함께 만들어갈 새로운 역사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고 믿는다.(이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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